고광헌

고광헌(高光憲, 1532년 ~ 1592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다 전사한 인물이다.

{"생애":"고광헌은 1532년 조선에서 태어났다. 자는 사겸(士謙), 호는 송암(松巖)이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1561년(명종 16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홍문관정자, 사헌부지평,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하며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당시의 붕당 정치 속에서 권력 다툼에 휘말려 여러 번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머무는时期도 있었다.","임진왜란과 의병 활동":"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광헌은 고향인 충청도 회덕(현 대전광역시 대덕구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해 왜군에 맞서 싸웠다. 그는 61세의 고령이었으나, '나라가 위급한데 어찌 편안히 있겠는가'라며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수백 명의 의병을 이끌었다. 주로 청주, 공주, 연산 등 충청도 일대에서 활동하며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소규모 교전을 벌였다. 1592년 7월, 연산 전투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전사했다. 그의 의병 활동은 충청도 지역 의병 운동의 중요한 불씨가 되었다.","사후와 평가":"고광헌의 사후,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01년(선조 34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1695년(숙종 21년)에는 회덕의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이후 여러 사액서원에 배향되며 임진왜란时期的 대표적인 충신이자 의병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항전 정신은 후세에 큰 귀감이 되었다.","관련 문화유산":{"충렬사":"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위치한 사당으로, 고광헌을 주벽으로 하여 지역 의병들을 추모한다.","송암집":"고광헌의 시문을 모은 문집.","기념비 및 유적":"대전, 공주 등 충청 지역에 그의 활동을 기리는 비석과 유적이 다수 존재한다."},"같이 보기":["임진왜란","조선의 의병","곽재우","조헌","김덕령"],"참고 문헌":["《선조실록》","《난중잡록》","《국조인물고》","《충청도의병사》"],"외부 링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고광헌","국가문화유산포털 - 고광헌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