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전태진은 1962년 8월 25일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1981년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민주화 운동과 항쟁":"1980년대 초반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선 학생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1985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어 군사 정권의 억압에 맞서는 시위와 운동을 주도했다. 이 시기 그는 '전학투' (전국학생투쟁위원회) 구성에도 참여하며 전국적 학생운동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분신":"1986년 4월, 부천경찰서에서 여성 운동가가 성고문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항의하며 전태진은 5월 3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최후의 투신'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5월 18일 2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1986년 5월 전국적 항쟁으로 이어지며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사후의 영향과 평가":"전태진의 분신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그의 죽음은 부천 성고문 사건을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시켰고, 군사 정권에 대한 저항을 촉발했다. 많은 시민과 학생이 그의 장례식에 참여하며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쳤다. 역사학자들은 그의 희생이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직선제 개헌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한다.","기념 사업과 유산":"매년 5월이 되면 전태진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린다. 연세대학교에는 그의 동상과 추모비가 세워져 있으며, '전태진 기념사업회'가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전태진상'은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된다. 2016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그의 희생을 기리는 공식 행사를 개최했다.","대중문화에서의 묘사":"전태진의 삶과 희생은 다수의 다큐멘터리, 영화, 문학 작품에서 다루어졌다. 2017년 영화 '1987'에서는 그의 분신 사건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며, 당시 민주화 운동의 절박함을 생생히 전달했다. 시와 노래에서도 그의 정신은 계속해서 기리어지고 있다.","같이 보기":["6월 민주항쟁","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한국의 민주화 운동","연세대학교","1987 (영화)"],"참고 문헌":["《전태진 평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 (역사비평사, 2003)","《1980년대 학생운동 연구》 (한울아카데미, 1995)"],"외부 링크":"[한국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태진 자료실","국가인권위원회 전태진 기념 페이지","연세대학교 전태진 동상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