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생애","paragraphs":["황영묵은 1890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며 민족 의식을 키웠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독립 운동에 투신했다.","1919년 3·1 운동 당시 밀양 지역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밀양에 사립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교육에 힘썼다.","1920년대 후반에는 신간회 활동에 참여하며 민족 연대 운동을 펼쳤고, 1930년대에는 농촌 계몽 운동을 통해 민중의 의식을 고취시켰다. 1945년 광복 후에는 교육 재건에 주력하다 1960년 사망했다."]},{"section":"주요 활동","paragraphs":["황영묵은 3·1 운동 당시 밀양 장날을 이용해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고 군중을 모아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출옥 후 1921년 밀양에 '영신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교육을 실시했다. 이 학교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는 저항 교육의 장이 되었다.","1927년 신간회 밀양 지회를 창립하고 지회장을 맡아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을 연계했다. 또한 1930년대에는 농민 조합을 조직하여 농촌 경제 자립을 도모했다."]},{"section":"사후 평가","paragraphs":["황영묵은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그의 교육 정신과 독립 운동은 밀양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사로 기록되고 있다.","현재 밀양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영신학교는 지역 교육의 역사적 상징으로 남아 있다."]}]
황영묵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 일제강점기 민족 교육과 독립 운동에 기여한 인물이다.